선(善)과 선(羨)
선은 나름대로 자신의 팔자가 드세다고 생각했다. 팔자가 드세니까 이렇게 사는 거라고 한탄아닌 한탄을 했지만서도 이 이상한 이름은 부모에게서 마지막으로 받은 것이라고 눈을 감을 때 까지 바꾸지 않았다.
부러워할 선을 썼다고 했다. 무덤길 연이라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모님은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일찍 죽은 언니의 이름에 착할 선을 넣어서 명이 짧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다른 뜻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부모님은 이상한 한자를 썼다고 했다. 선은 태어났을 때부터 날던 새를 떨어트리고, 선이 태어나길 기다렸다던 할배를 죽였다.
살아서 그렇게 사는 거라고 했다. 선은 다섯살이 되던 해에 길렀던 작고 예쁜 하얀 고양이를 떠올렸다. 너무 추워서 덜덜 떠는 손으로 이불을 두 겹이나 끌어다 덮고 그 누구도 아니고 가장 어렸을 때, 가장 사랑을 줬던 그 고양이를 떠올리는 자신이 조금 웃겼다. 오년이었나, 그 고양이를 키웠던 게. 다른 것들에게 마음 주는 것을 그렇게도 싫어했던 집안의 어른들은 선이 고양이를 감싸고 도는 것은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선은 그 고양이를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다.
고양이를 땅에다 묻고 머리만 나온 작은 그 생명을 보면서 목을 그었을 때도 딱 지금처럼 추웠는데 아프니까 별 생각이 다 든다. 곁에서 노랗게 눈을 빛내는 고양이는 그때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떠나라고, 떠나라고 그렇게 제사를 지내고 떠나 보내도 끝끝내 자리를 지키는 미물이 불쌍한 것인지 본인이 가여운 건지도 모르겠다고 배를 움켜쥐고 있던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와서 변명하자면 선에게는 그 세상이 전부였다. 가끔씩은 자기가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으면, 혹은 방출된 다른 형제들처럼 신병을 이기지 못하고 일찍 죽거나 제 발로 나갔으면, 하다 못해 재능이라도 없었으면. 분명히 지나 온 시간들에 수십 번 고칠 수 있었던 것들이 존재했음에도 선은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보던 붉은 머리의 여자를 떠올렸다.
그 여자는 모두가 저를 가엾다고 할 때 비웃었던 여자였다. 제게 엄격한 모습을 보이던 할머니 조차 치를 떨던 여자 눈 한 번 예쁘게 뜨지 않던 여자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 어린 나이에도 얼마나 후련하던지. 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도 자신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될 줄 알고 고독을 빌려줬지만 후회되지는 않았다. 악하게 태어난 것은 악하게 죽기 마련이었다. 자신처럼.
할매가 흔들던 방울 소리가 듣기 싫어도 결국 자기가 그 방울을 들고 개를 죽여 올렸다던 재단 앞에 섰던 것처럼 허여멀건한 어린 얼굴을 떠올리던 선이 쓸데 없이 넓은 방을 보다 제 곁을 떠나지 않은 묘귀에게 손을 뻗었다. 어르신들은 그 때 만들었던 묘귀가 완전히 실패작이라고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더 아기의 오래 곁에 남을 수 있는 묘귀가 하나 더 있었으면 했다. 그냥 그 뿐이었다.
고양이는 선이 열 살때 죽어 눈 앞에 나타났던 것처럼 여전히 선의 곁에 다가오지 않았다. 그 때처럼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건만. 부탁하는 것들은 다 들어주는 주제에 배신 당했다는 것인지 절대로 곁을 내어주는 일은 없었다. 그냥 그 고양이를 내버려 둘 걸 그랬다. 그랬으면 그 허여멀건한 어린애가 조금이라도 더 웃어줬을 텐데. 또 밥을 같이 먹자고 손을 잡아 끌었을텐데.
그래도 그것이 선의 삶이었다. 짓밟는 것들을 부수고 막는 것들을 찢고 필요한 것들을 죽이고. 그녀는 그렇게 살았고 그게 나라는 사람의 삶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늘 사람을 살리며 살아서 그 할매도, 그 위의 할매도 전부 다른 사람들 손에 죽었으면서 사람을 살리고 엄한 것들을 살리고 살아서 그 여자는, 그 여자의 자식은 살리는 것 뿐이라고, 다른 이를 죽일 것 같은 눈을 하고서 손을 잡아 끄는 삶 속에서 살아서 손을 잡아 끌었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좀 들어?”
그래서 이상했다. 이 빨간 머리들은 도통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끼리끼리인건지 죽을 들고 멍청하게 선 것도 그렇고. 저 고운 어린애도 그렇고 다들 정신머리가 빠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옆에 앉는 것이 이상했다.
“아줌마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아줌마가 그렇게 싫어한 이름말야. 넉넉해지다, 풍요롭다라는 뜻도 있어.”
“…”
“사모하다는 뜻도 있어.”
틱틱거리며 말하는 어린애의 얼굴을 보던 선이 조용히 웃었다. 다른 무당들은 그런 악귀는 쳐다도 보지 말라고 알려는 생각조차 말라고 했던 것을 신으로 정성껏 모셔도 눈길조차 주지 않던 묘귀가 애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선아 가자. 흉측한 목소리로 말하는 묘귀를 빤히 보던 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이는 난생 처음으로 그 어린애의 얼굴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그 아기를 모르는 체 해서, 그 어린애의 손에 피가 묻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완벽한 고독을 쥐어줄 수 있었는데, 그게 약간 아쉬웠지만… 알아서 잘 하겠지. 손 끝에 묘귀의 형상이 닿았다.
제일 차가운 곳에서 고통스럽게 죽은 고양이의 따뜻한 온기에 선이 입술을 조금 삐죽이다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고양이 만큼이나 따뜻한 손으로 닦아주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조용한 숨이 바스라졌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할 상상들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문이 닫힌 놀이공원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축제, 맵싸한 향이 나는 계절과 같은 잔혹하거나, 흉학하거나, 비밀스러운 상상들이 어느새 당신의 옆을 차지한 교활한 강아지처럼 떠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선(善)과 선(羨)


